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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꼬꼬무 시즌3

꼬꼬무 화성 씨랜드수련원 참사사건 정리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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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9년 6월 28일 세라라는 한 어린아이가 한창 들떠있었다. 내일 유치원에서 1박 2일로 여름캠프를 떠나기 때문이다.
장소는 서해안 인기 관광지 경기도 화성 백미리 씨랜드 수련원 세라는 한 달 전부터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음날 세라와 같은 7살 햇님반, 6살 달님반, 5살 별님반까지 아이들만 총 42명 사진기자, 비디오 기자, 버스기사, 선생님, 원장 선생님 모두가 다 탑승하고 렇게 버스는 출발했다.

세라 아버지는 퇴근하고 나서 아이가 없는 허전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새벽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처체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형부, 지금 빨리 텔레비전 켜봐요!"
"텔레비전 왜?"
"빨리 켜봐요 빨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처제는 울기 시작한다.
세라 아빠는 뉴스를 보자 눈앞이 하얘진다. 세라가 캠프 간 씨랜드 수련원이 불이 난 것이다.

그날 캠프 온 인원은 총 550명이었다. 대부분은 유치원생 어린이들이었다.
1층은 거의 쓰지 않고 2층과 3층을 숙소로 주로 사용하였다
양쪽으로 방 13개, 총 26개의 방
한 방에 15~16명씩 아이들이 배정이 됐다. 출구는 양쪽 끝에 하나씩 있다. 그날 아이들이 방안에 들어온 것은 밤 9시였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피곤했는지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든다. 캠프 규칙으로 인솔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취침을 해야 한다. 어느덧 새벽 1시 화재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송영규 태권도 관장이다. 사전 답사차 씨랜드에 왔다가 돌아가려던 차에 송 관장이 발견한 것이다.


송 관장은 3층 복도 전체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있는 걸 보고 화재가 난 것을 직감했고 잽싸게 화재경보기를 찾아 경보를 울리려 했으나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송 관장은 있는 힘껏 "불이야"라고 외쳤다.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선생님들 비몽사몽인 아이들을 깨워 나가야 하는데 그 사이 갑자기 정전이 된다.
총인원 550명 중 아이들만 500명



송 관장은 불길이 나기 시작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불이 시작된 곳을 알아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304호 문을 열어보고 303호, 302호 그리고 301호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화재 진압을 위해 바로 소화기를 집어 들었고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잡아 누르는데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302호에서 아이 우는 소리를 들은 송 관장은 아이들을 구하며 어른들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그렇게 302호 전원이 구조된다. 마지막으로 건물을 빠져나오는 순간 바깥쪽에서 전선이 터지면 건물 전체가 타기 시장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불이 너무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놀랐정도였다. 불은 마치 갈대처럼 퍼져나갔고 너무 뜨거워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불을 발견한 지 불과 20분 만에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다.

그리고 신고한 지 한참 지났는데 소방차는 도착하지 않았다. 보통 신고한 지 7분 안에 도착하는데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하는데 그것도 겨우 한대만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소방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새벽 4시 반이 지나서야 화재진압이 완료되었다. 곧바로 수색작업이 진행된다. 건물 안으로 진입한 소방대원은 2층부터 수색에 들어가고 절반쯤 지나 223호쯤에 도착했다. 출입문 앞에 무언가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이의 시신이었다. 캠프에 온 74명 중 유일하게 구조되지 못한 1명 여섯 살 혜지였다. 담임선생의 말로는 분명 혜지를 깨워서 나왔는데 인원 파악을 하니혜지가 없는 것이었다. 2층에선 혜지 말고는 더 이상 사망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은 3층 수색을 시작하는데 시신이 여럿 발견된다. 318호에 1명, 306호에 3명, 한 명은 초등학교 교사였고 다른 세명은 씨랜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불길 속에서 아이들을 구조하려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소방대원들이 301호에 들어서는데 창문 아래쪽에 뭔가가 잔뜩 모여있었다. 불에 탄 시신들이었다. 몇 명인지 확인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301호는 소망유치원 이이들이 배정된 방이었다. 세라가 있는 방이다. 301호 전원 사망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송 관장은 충격에 휩싸인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다 구했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현장을 빠져나왔는데 다음 날 이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는 그날 아이들을 구하지 못해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301호에 발생한 사망자 중에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솔교사가 있었어야 하는데 없었던 것이다. 선생들은 314호에 있었다고 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방인데 어떻게 불이 난 줄 몰랐을까? 회의를 하고 있어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정말로 314호에서 회의를 한 게 맞냐고 물어보자 회의가 아니라 회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재 당시 314호에서 사람이 나오는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314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선생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국과수에서 단 이틀 만에 결과가 나오는데 화재원인은 모기향이다. 모기향 때문에 이렇게 큰 불이 나는게 가능할까? 뭔가 이상하다 느낀 전문가들은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 모기향으로는 그렇게 큰 불이 날 수가 없었다. 모기향 주변에 그을림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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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구나 상식적으로 합선 누전에 의한 화재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고 조사해야 하는데 사고 다음날 바로 모기향이 원인이라고 결정해 버렸고 합선 누전에 대한 부분은 전혀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모기향이 원인이면 개인의 문제이지만 합선 누전이 원인이라면 책임자는 수련원과, 정부의 책임이 된다. 외국에서는 화재 원인을 밝히는데 2~3개월 이상 걸리는데 단 2~3일 만에 원인을 발표한 것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소방차가 늦은 이유는 캠프로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좁은 이유 때문이었다. 버스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폭이었다. 그래서 소방차는 다른 진입로로 들어가려 하는데 철망이 쳐있었던 것이다.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겨우 도착한 것이다.


화재 후 모습을 보면 1층은 멀 정하지만 2층 3층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탔다. 2, 3층은 컨테이너 박스였다. 더군다나 컨테이너끼리 용접도 안 하고 그냥 쌓아 실리콘만 발라 놓은 것이다. 그리고 화재 당시 너무 뜨거워서 근접할 수 없었던 이유는 컨테이너는 철판이라 달궈지면 열이 엄청나게 높아 지기 때문이었다. 내부는 펄펄 끓는 솥이 되는 것이다. 또 불이 빨리 번졌던 이유는 샌드위치 패널 때문이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붕을 덮은 씨랜드 패널을 덮는 철판인 빵이 없었다 스티로폼은 철판이 없어 그대로 노출되어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건물을 지은 이유는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이다. 콘크리트, 철근을 사용하면 방 1개를 만드는 비용이 1500만 원이고 컨테이너를 놓으면 방 1개 비용은 210만 원이다. 씨랜드 2층, 3층을 짓는 시간은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설비는 무허가 업자에게 맡겼고 소화기는 애초에 다 불량이었다. 경보기는 아이들이 장날 칠까 봐 일부러 꺼놨다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을 소환해 알아보니 씨랜드에서 제출한 건축허가서, 설계도면 모두 가짜였다. 수련원의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던 담당 직원이 경찰에 제출한 비망록을 보면 1998년 1월 3일 강 과장이 오늘 퇴근을 못하더라도 씨랜드 인허가 절차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1998년 8월 20일 사전영업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 결재를 올렸더니 강 과장이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 씨랜드 건에 대해 과장이 이상하게도 과민반응을 보였다.

군수 포함 관련 공무원들을 조사했지만 혐의는 밝혀지지 않았다. 씨랜드 화재 참사 6개월 후 판결은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원장 징역 5년, 벌금 5백만 원, 소망유치원 원장 징역 2년 6개월, 햇님반 선생님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화성군청 강 과장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나머지 관련 공무원 6명 무죄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유족들은 국회, 정부청사를 찾아가고 총리 면담을 무려 9차례나 신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유족들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은 송 망유 치원 해님반 도현이의 어머니는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였다. 1986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년 올림픽 은메달을 따서 받은 훈장이다. 도현이 어머니는 나라에서 받은 훈장을 반납했다.
"사고 전에는 훈장이 저희 집에 가보였는데 이번 사고로 인해서 정부가 저희 애들한테 대처하는 행동을 보고 사실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반납하게 된 거예요"
"도대체 국가란 뭔가? 이렇게 받은 훈장이 나한테 무슨 필요가 있는가"

훈장을 반납했단 소식에 매스컴에선 앞서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제야 총리와의 면담이 성사가 된다. 사고 발생 50일 만이다.
"저희가 총리님을 9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는데 너무 늦지 않았나 싶어서 좀 유감스럽긴 합니다."
국무총리 김종필 "아직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신 거 같은데 잘해주셨으면 합니다."

유족들에게 재수사 지시를 약속한 총리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추가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 후 인천 인현동에서 큰 불이 난다. 대부분 중고등학교 아이들이었다. 원인도 과정도 씨랜드와 판박이가 사건이었다. 4개월이 지났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 결국 도현이 가족은 대한민국을 떠나고 이민을 간다.



유족들은 아이들과 꼭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을 했다. 더는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유가족들은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단도 만들었다. [한국 어린이 안전재단] 재단 설립 비용은 아이들을 잃고 받은 피해보상금으로 설립을 한 것이다.

참사 38일 후 아이들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아이들의 유해는 씨랜드 수련원에서 가장 먼 곳인 동해에 뿌려졌다.



출연진 : 장성규 ,장현성, 장도연
게스트 : 백지영, 타블로, 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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