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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꼬꼬무 시즌3

꼬꼬무 실화 1991 모가디슈 정리 지옥에서 탈출하라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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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경상북도 경주 갓난아기와 함께 남편을 찾아 16000km 아주 먼 거리를  떠나는 여인 김두남 씨
크리스마스이브
 스위스 -> 아프리카 케냐를 거쳐 아프리까의 뿔 소말리아로 향한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펼쳤던 곳이고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 도착해서 남편 박용원 씨를 만난다.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대포와 기관총 소리가 요란히 울리기 시작한다. 
21년간 독재를 해온 대통령 시아드 바레의 정부군과 아이디드 장군의 반군 사이에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말리아 내전의 중심지는 대통령궁이 있고 대사관이 모여있는 모가디슈였다.

군인뿐만 아니라 강도들도 총기를 소지했고 내외국인 할 것 없이 그들의 소유물을 강탈했다.
총 7명인 한국 교민들은 무장 경비가 있는 강신성 대사의 집으로 모였다. 무장 경비가 있어 안전할 줄만 알았던 이곳에서 무장강도와 경비 간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격전 끝에 강도들을 돌아갔고 관저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교민들은 소말리아를 탈출하려 한다. 

강신성 대사

비행기표도 구할수 없는 상황에 공관과 사택에 물건을 대주는 상인이
"모레 케냐 항공기가 모가디슈에 온다. 그게 마지막으로 오는 민간 비행기다."라는 고급 정보를 강대사에게 알려주었고 강대 사관에게 돈을 받고 비행기를
구하러 떠난 상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탈출을 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공항 관제탑으로 가 케냐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통신을 해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다.
한국대사관 직원이 공항으로가 도움을 요청했고 공항 직원은 흔퀘히 허락해주었다. 구조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교민들은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 비행기는 도착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고 비행기는 떠나버렸다. 
강대사관은 공항장에게 항의를 했다.  방금 온 비행기는 이탈리아 비행기였고 한국 비행기는 구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신상에 착오가 생긴 것이다. 

낙심한 한국인들... 갑자기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북한대사관 사람들이 있었다. 냉랭한 분위기였다.

이때 당시 냉전시대로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의 대립이 극심했던 때였다.

한국이 un에 가입하는 것을 공산주의 국가가 반대했고 통일 후에 단일 국가로 un 가입하겠다는 북한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자 한국은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할 것을 요청했고 이 제안을 반대하면 한국만 단독으로 가입하겠다고 주장한다.
결국 un가입 찬반 투표가 진행되었고 남북은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 외교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소말리아는 un가입 찬반 투표권을 가진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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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무장강도에게 8번이나 당한 것이다.
사정을 딱하게 봤던 강대사관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차를 보내달라 요구했고 쌀과 부식을 가지고 강대사관의 집으로
모여 남북한이 함께 탈출을 하기 위해 합심한다.

소말리아는 예전 이탈리아의 식민지였었다. 독립은 했지만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여전히 큰 상태였다. 비행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려면 대통령궁을 지나야 하는데 그곳은 반군과 정부군의 최대 격전지였다. 강대사관은 혼자 위험지역인 대통령궁을 지나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다. 이곳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평소 이탈리아 대사관과 친분이 있던 강대사관은 금방 면담을 잡았고 남북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인원은 총 스물한 명 이 말을 들은 이탈리아 대사관은 말없이 대사관 2층으로 올라갔고 세 시간 뒤에 나타나
"본국 사정이 어려워 적십자 비행기를 하나 구했는데 좌석이 7~8자리 밖에 없다. 한국사람들만 먼저 대피하세요"라는 것이다. 절망감을 느낀 강대사관은 자신을 믿고 온 북한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었다.

 

이탈리아 대사관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모두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또 아무 말 없이 2층으로 향한 대사관은 한 시간 뒤에 돌아왔다. 그는 "어려운 교섭 끝에 군 수송기 한대를 마련했다. 구조기가 언제 올지 모르니 가능한 한 빨리 사람들을 데려오세요"라는 것이다. 

한국대사관의 남북한 사람들을 이동시키려면 차량 4대가 이동을 해야 하는데 강대사관이 왔던 길로 오는 것은 상당히 위험
부담이 컸다.

한국 관저에서 이탈리아 대사관까지는 10~15분 소요된다. 소말리아인은 99%가 이슬람교이고 하루에 다섯 번 10분 정도 예배를 한다. 이때는 전투도 잠잠해진다. 그래서 남북한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한다.

예배 시작 후 출발했을 땐 잠잠했으나 대통령궁에 도착하자 갑자기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정부군이 반군으로 착각하고 사격을 한 것이다.

가까스로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했지만 극심한 격전으로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했다.
정부군과 반군이 2시간 동안 휴전하기로 한 사흘 뒤 비행기가 온다는 것이다.  
약속한 날 비행기가 도착했고 남북한 사람들이 탑승하려 하는데 수백 명의 소말리아인들이 탈출을 하려고 풀 숲에 숨어있다 비행기를 보고 뛰쳐나온 것이다. 이곳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지만 남북한 21명의 사람들은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고 14일 만에 탈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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