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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꼬꼬무 시즌3

꼬꼬무 시즌3 16회 LA폭동 사건정리 1992년 로드니킹 한인타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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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9일 LA 교민 조성환 씨는 한인 주류판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따라 밖에 사람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았다. 마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누가 다급히 뛰어들어 왔다. 이웃주민 이었었다. 왜 빨리 문 안 닫고 여태까지 여기 있냐는 것이다. 성환 씨는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 뉴스에서 흑인들이 백인 운전사를 끄집어내 집단 구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장소가 성환씨 가게 근처였다.

 

 

 


성환 씨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바로 그때 흑인 여러 명이 달려와 차를 흔들고 두드리는 것이다. 다행히 폭도들은 많지 않아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큰 길로 나오자 엄청난 인파의 폭도들이 있었다. 성환 씨는 고심 끝에 볼펜 잉크를 얼굴에 발라 흑인처럼 위장했고 이 방법이 통했다. 그날 폭도들은 밤새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불태웠다. 성환씨의 주류점은 주유원 4년+정원사 3년 총 10년을 일해 마련한 가계였는데 폭도들에 의해 한순간에 다 타버린다. 피해자는 성환 씨뿐만이 아니었다. 이때 당시 한인 가게는 1만2천개 이상 있었는데 이중 60% 이상이 불에 타거나 부서졌다. LA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고속도로 폐쇄, 야간 통행금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 폭동은 왜 일어 난 것일까?

1991년 3월 3일 LA 근교 고속도로에서 흰색 차량과 경찰 간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흰색 차량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질주 했다. 경찰차 4대와 헬기가 동원이 됐다. 추격전 끝에 경찰차가 진로를 차단했고 범인을 체포하러 달려갔다. 체포된 범인은 흑인이었다. 이름은 로드니 킹 25살 그가 도망친 이유는 음주운전을 했기 때문이다. 혈중 알콜농도 0.19% 면허취소 수준으로 완전 만취상태였다. 그런데 미국 경찰 4명이 저항도 하지 않는 그를 쓰러트려 놓고는 야구방망이로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81초 동안 56번의 몽둥이 질을 했다. 로드니 킹은 얼굴만 20 바늘 꿰매고 온몸에 11군데가 골절되고 뇌손상에 청각장애까지 생겼다. 시민들은 명백한 과잉진압이라고 분노했고 경찰관4명의 신상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문제를 일으킨 경찰관중 3명은 백인이었고 1명은 히스패닉이었다. 신상공개후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났고 미국 전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은 로드니 킹이 너무 심하게 반항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폭행 경찰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무전으로 통신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었다.

체포 당시 무전 내용
"고릴라 같은 검둥이 새끼"
로드니 킹을 병원으로 후송한 후의 무전 내용
"오늘 밤 야구 경기 재밌었지? 홈런도 여러 방 날렸잖아"
폭행 상황을 야구 경기에 비유한 것이다.


폭행 경찰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되는데 장소는 시미밸리란 곳이었다. 시미밸리는 대표적인 백인 거주 지역으로 흑인이 거의 없었다. 배심원제도인 미국 재판에 백인의 비율을 높게 하기 위해 시미밸리에서 재판을 한 것이다. 이날 배심원 12명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판은 1년을 끌어 1992년 4월 29일 판결이 난다. 흑인들은 법원으로 몰려들었다. 경찰관 4명 중 3명은 무죄 나머지 한 명은 재심사 사실상 전원 무죄였던 것이다.

 

 

 


"정의는 실종됐다"

흑인들은 바로 시위에 들어갔다. 법원에 짱돌을 던지고 경찰청사, 시청, 언론사 전부 쳐들어 갔다. 거기다 히스패닉까지
시위에 합세했다. 그리고 무분별한 약탈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흑인과 백인의 갈등에서 시작된 폭동인데 피해는 한인들에게 집중되었다. 평소 흑인들의 인식은 한인들이 흑인을 무시하고 도둑 취급을 해서 악감정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흑인 래퍼 아이스큐브의 노래에서 알 수 있다. 노래 제목은 '블랙 코리아' 가사의 내용은 한국인들이 흑인을 도둑으로 의심해서 화가난다는 내용이다. 이 앨범은 100만장이나 판매되었다.
폭도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던 한인들은 구조요청을 하려 했지만 주변에 경찰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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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가게에 갇혀 벼랑 끝에 몰린 한인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LA 한인 라디오 방송을 통해 폭도들의 출몰 위치와 화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라디오 방송국은 전 직원이 24시간 2교대로 근무를 했다. 방송으로 "시민 여러분 안전한 집으로 들어가 대피하십시오"라고 방송을 하고 있는데 총을 든 남성들이 찾아와 "집으로 돌아가면 어떡합니까" "이데로 가면 코리아타운은 전부 무너집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총을 들고 싸우자는 것이다.

특전사, UDT, 공수부대, 해병대 등 예비역들로 이루어진 한인 자경단을 결성하고 임시 대책본부를 만들어 구조요청이 들어오면 조를 짜서 출동을 했다. 이들의 원칙은 살상 금지이다. 자경단은 지붕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구출했고 이를 본 언론들은 자경단의 활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자경단을 루프 코리안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시위와 약탈 방화에 따른 소요사태가 계속 발생하자 결국 미국 대통령이 진압에 나서게 된다. 연방군, 해병대, 공수부대, FBI까지 총동원된다. 동원된 병력은 20,000여 명 6일 만에 폭동은 끝이 난다. 사망자는 58명 부상자는 2,400여 명 재산피해는 7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2천700억이다. 피해액의 절반 이상이 우리 교민이 입은 피해액이다. 이날 경찰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었던 것이다.

○ 경찰은 어디에 있었을까?

처음 폭동 당시 경찰은 시위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무전을 받고 난 뒤로 전부 사라진 것이다. 흑인들의 목적지는 백인 거주지였고 경찰은 백인 거주지이자 부촌인 베버리힐즈, 할리우드를 지키기 위해 이동한 것이다. 베버리 힐즈를 가려면 한인타운을 경유해서 가야 했는데 경찰이 베버리 힐즈를 봉쇄하자 경유지인 한인타운이 폭도들의 타깃이 된 것이다. 그럼 한인타운이 공격당할 때 구조를 오면 되는데 왜 한 명의 경찰도 출동하지 않은 걸까? 이유는 폭동을 일찍 진압하면 흑인들을 더 자극할까 봐 지켜봤다는 것

폭동이 진압된 후 LA 미국 전역, 한국에서 성금을 모았고 우리 교민들은 다시 LA로 모여 망가진 가계와 거리를 청소하고
평화를 외쳤다.

 

 

 

 

출연진 :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
게스트 : 장항준, 윤하, 허니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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