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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꼬꼬무 시즌3

꼬꼬무 시즌3 15회 김주열열사 3.15부정선거 4.19혁명 피의화요일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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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마산에 있는 한 병원의 수술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바짝 긴장해 있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당시 수간호사로 근무했던 정성자 씨는 의사에게 뜨개질할 때 쓰는 실인 무명실을 건넸다.
그리고 10명이 실을 나눠 잡더니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20m 아예 건물 밖까지 나갔다.


"다들 단단히 잡으세요!"
"하나 둘 셋에 당기는 겁니다"


이렇게 줄다리기를 한 이유는 한 소년의 얼굴에 박힌 불발탄을 터지지 않고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이 소년의 이름은 김주열 17살 학생이다.

주열은 형과 함께 마산으로 왔다. 마상상고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운 주열이네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당시 명문고인 마상 상고에 진학해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직하려고 한 것이다. 3월 13일이 합격자 발표날이었는데  발표가 이틀 뒤로 연기가 된다. 그리고 15일 주열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겠다고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간다. 곧장 경찰서로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고 인상착의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경찰은 어머니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우리 아들 주열이 좀 찾아주세요"

"집 나간 아들을 왜 여기와서 찾습니까"
"기다려 보세요 때 되면 돌아오겠죠"
"이 사진 한번만 봐주세요"


어머니가 계속 매달리니까 경찰은 "당신 아들 내가 잡아먹기라도 했소?"라며 어머니를 내쫓았다. 결국 어머니는 혼자서 주열이를 찾으러 나섰다. 같은 시각 부산일보 마산 지국 허종도 주열이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는 단순 실종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치적으로 험악한 시기라 마음껏 취재할 수 없던 당시 허기자는 카메라를 몸속에 숨겼다. 다른 신문사 기자들도 하나 둘 추적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실마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거리에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주열의 실종은 마산의 미스터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김주열 말이오"
"시체를 시청 뒤 연못에 던졌소"
"전화를 거신분은 누구십니까"
"나 마산 시민입니다. 더 이상 알려줄수 없소"


마산시민 수천명이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였다. 소방차 두대가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물이 가슴팍까지 올 정도로 빼냈을 때 수영선수들이 들어가 긴 장대로 물속 구석구석을 휘저었다.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 앉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실종 27일째 주열이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어머니는 다시 남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로부터 3시간 후 허기자가 다방에 앉아있는데 낯익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바로 허기자의 정보원이었다. "찾았습니다. 지금 바로 중앙부두로 가보 이소" 현장에는 이미 몇 명이 와있었고 허기자도 뛰어가 물속을 들여다 보았다. 물 위로 떠오른 시체를 보고는 주열이 인 것을 직감했다. 허기자는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향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놓게 된다.

 


시신은 바로 마산병원으로 옮겨졌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프로펠러가 달려있는 쇠덩이가 눈에서 목 뒤까지 뚫고 나왔다고 한다. 의사가 핀셋으로 쇠덩이를 툭툭 건드리자 "안돼! 모두 엎드려! 폭발해요!"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무래도 불발탄 같아요" 황급히 군부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육군에서 폭탄 전문가가 도착했다.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폭탄 전문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실로 연결해 멀리서 뽑기로 결정하고 주열의 얼굴에서 쇠덩이를 뽑아낸다. 쇠덩이의 정체는 최루탄이었다. 보통 체류탄이 아니라 테러진압용으로 발사도 손이 아닌 총으로 발사하는 강력한 최루탄이다.

 

 

이게 왜 사람 얼굴에 박혀있는 것일까? 

위해성 경찰장비 사용 기준 규정 제 12조에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우 30도 이상의 발사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최루탄을 쏜 범인은 방종표 경위 마산경찰서 경비 주임이다. 

 

박종표 경위

그런데 왜 마산상고의 합격자 발표가 미뤄졌을까?
1960년 3월 15일은 제 4대 대통령, 5대 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으로 2번의 개헌으로 12년간 장기 집권 중이었다. 경쟁자 후보는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였는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사망한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단독 출마로 당선이 확정이 된 것이다. 문제는 부통령이었다. 여당의 부통령 후보는 이기붕 그는 무능했고 인기도 없었다. 지난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패배하고 대통령 여당의 이승만과 부통령 야당의 장면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했다.

 


내무부 장관은 경찰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당선되도록 하라" 

"콩밥 먹 오도 내가 먹고 징역 가도 내가 간다"

 목표 득표율도 85%로 지정해 놨고 사표까지 미리 받아 놨다. 그리고 비밀 지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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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지령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알 수 있게 공개투표를 하게 해라
투표소에 정치깡패를 배치하고 누구를 찍는지 지켜보게 했다.


두 번째 지령 야당 참관인을 사전에 매수해라 불가능할 때 가족의 사망 전보를 쳐서 즉시 돌아가도록 조치하라
47개의 마산 투표소 중 야당 참관인이 들어간 곳은 2~3군데뿐이었다.


세 번째 지령 투표 전에 4할 정도의 표를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어 미리 투표함에 집어넣어라
이날 유권자 수보다 표가 더 많이 나와서 도로 빼서 불태우기까지 했다.


네번째 지령 바꿔치기할 때 야당 참관인이 못 나오게 막고 부득이할 경우 유혈극까지 실행할 것을 각오하라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3월 15일이 다가왔다. 아침 7시 투표를 시작하자마자 한 투표소에서 난리가 났다. 야당 측 참관인이 사전투표를 눈치챈 것이다.


"투표함 열어보라니까"
"빈 투표함을 뭐하러 열어보라는거야"


몸싸움이 시작 되었고 투표함이 쓰러지며 표가 쏟아져 나왔다.


"사전투표를 적발했다.~ 야이 도둑놈들아!"


이 투표소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사전투표가 발각되었다.
오전 10시 30분 야당은 선거 중단을 선언하는 벽보를 붙였다.


"이번 선거는 불법 무법 선거다."
"인정할 수 없다."


플랜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투표할 권리를 달라"


시민들이 하나 둘 합류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민주정치 도로 찾자"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고 어느새 3천 명이 넘는 시위대가 되었다. 주열이 형제도 시위대에 합류해 구호를 외쳤다. 
이날 시위에는 중, 고등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박경위는 기동대원들과 시청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중 삼중으로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소방차 지프차 군용차가 서있고 경찰은 옆에 딱 서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이성을 찾고 귀가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상사가 생깁니다."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시청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소방차 한대가 갑자기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거리가 암흑으로 변했다. 소방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리고 일렬로 배치돼있던 차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지고
경찰들이 총을들고 나타나 시민들을 겨누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위대 머리 위로 펑펑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최루탄이었다.
그 한가운데 서있던 주열 형제 "주열아 위험해 뒤로 물러서" 형이 동생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한순간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주열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주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실탄을 쏘기 시작했다. 경찰이 학생에게 칼빈 총을 등에 대면서 빨리가 새끼야 빨리 가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하는 것이다. 학생 승기는 경찰 총에 맞아 다리를 절단하게된다. 경찰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학생들을 모조리 연행했다.

 

 

그날 밤 마산경찰서 순경하나가 막 뛰어오더니 박 경위를 찾는다. "눈에 포탄이 박힌 시체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어린 학생이 하나 누워있었다. 바로 김주열이었다. 상부에 보고를 하자 "자네가 알아서 적당히 처리해"라는 것이다. 박 경위는 주열의 시신을 차에 싣고 부두로 가서 주열의 몸에 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졌다. 그러고는 시신이 가라앉는걸 한참 동안 지켜봤다. 그러나 27일만에 주열의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도에 떠내려가지도 않고 부패돼있지고 않았다. 두 손을 불끈 쥔 채로 다시 올라온 것이다. 분노로 가득찬 시민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경찰들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 총으로 맞아 죽은 사람이 주열이 뿐만 아니었다. 총 185명이 부상당하고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6명이 10대였다.

김영호(19세), 김용실(18세), 김효덕(19세), 전의규(18세), 김삼웅(19세) 어린 10대들이 모두 관통상을 당했다.

이후 시위가 불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경찰서의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서장의 지프차도 불태웠다.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

"죽은 아이들을 살려내라!"


이승만의 대답 

 

"마산 시위는 공산당이 배후 조종해서 일어난 폭동이다" 

"어린 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건 자식을 방임한 부모들의 잘못이다."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의 대답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경찰들 장난감으로 준 게 아니다"


경찰들은 다시 실탄을 쐈고 10대 소년이 또 사망을 하게 됐다. 마산 시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저녁 7시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주열이의 시신이 발견 되었는데 왜 어머니는 마산에 오시지 않은 걸까? 경찰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못 가게 막고 있었던 것이다. 주열의 어머니가 마산에 오게되면 시민들을 자극할까 봐 그런 것이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폭우가 내리는 날 병원 뒷문에 엠뷸런스 한대가 멈춰 섰다. 경찰이 몰래 주열을 시신을 실고는 남원으로 출발했다. 주열의 집에 도착하자 마자 경찰은 빨리 장례를 치르라고 윽박을 질렀다. 시신이 사라지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허종 기자가 찍었던 사진이 기사에 실려서 전국에 퍼지게 된 것이다.

 

 

이 사진의 파장은 엄청났다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19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가게 된다. 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지 딱 보름만이다.

 


한 달 뒤 신문에 실린 어머니의 편지


주열이가 행방불명이라는 소리를 전해 들었을 때는 살아있겠지 희망을 가졌습니다. 여러 자식 중에서도 특히 말이 없고 착한 자식의 죽음이고 보니  한층 더 미칠 것 같았습니다. 성격이 온순하기가 이를 데 없어 수걱수걱 공부와 일밖에 몰랐습니다. 철부지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갸륵했다는 것을 새삼 스러이 깨닫습니다. 그들은 압제자의 불의, 권력의 횡포를 언제까지나 참아야 했던 너절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귀여운 자녀들을 잃은 어머니 여러분 우리 다 같이 눈물을 거둡시다. 자식들이 뿌린 따뜻한 선혈이 헛되지 않도록 이 나라의 어머니로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밉시다.

5월 8일 권찬주 올림

 


4월의 영혼 故 김주열 


주열이가 죽은 후에 그의 앞으로 온 우편물에는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 합격증명서가 들어있었다. 

 

 

출연진 :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

게스트 : 유주, 진선규, 이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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