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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꼬꼬무 시즌3

백합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정리 꼬꼬무 시즌3 47회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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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5일 신탄진역 한 남자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다방으로 향하는데 다방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종업원 최 씨를 발견한다. 칼에 찔린 것이다. 경찰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30여 명의 형사들을 총출동시킨다. 길거리부터 건물 입구까지 혈흔 이 떨어져 있었고 다방 내부는 피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다량의 피가 흘려있었다. 김형사는 화장실로 향했고 문을 여는 순간 고무장갑을 낀 여자가 쓰러진 것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고 말했다.

15cm 칼로 목 부위를 6번이나 찌른 것이다. 현장에서 범인이 사용한 칼을 발견했다. 피해자가 칼을 뺏으려고 범인과 몸싸움을 했고 범인은 당황해 범행도구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피해자 최 씨는 경황이 없어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최면수사까지 동원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피해자와 원한, 치정, 채무관계 아무것도 나온게 없었다. 그러던 중 목격자 한 명이 나타난다. 다방 쪽에서 한 남자가 다급히 뛰쳐나오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자신과 부딪칠뻔해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범행시간과 대조를 해보니 일치했다. 그리고 몽타주를 만들어 낸다.

사건 당일 수집한 100개의 증거물에서 범인의 DNA를 찾지 못했다. 결정적인 증거물이라 생각했던 피 묻은 칼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많은 피가 묻어 있어서 지문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화장실 문에서 선명하게 찍힌 지문을 발견하고 조사를 해보니 전과 7 범인 사람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알리바이가 있었고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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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범인에 대한 단서가 없는 상황 
그때 다방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범인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피묻은 휴지를 발견, 그리고 다방에서 1.5km 떨어진 강가에서 발견된 점퍼 이 점퍼는 어느 낚시꾼이 자신이 입으려고 챙겨 놓은 건데 혹시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수색 중인 경찰에게 넘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깔끔한 검은색 점퍼로 보이는데 루미놀 검사를 해보니 혈흔이 들어 났다. 검사 결과 휴지에서 나온 혈흔과 점퍼에서 나온 남성의 혈흔이 일치했다.

그러나 혈흔을 발견 했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때는 2007년으로 범죄자 DNA 데이터 베이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그런데 점퍼 안에서 뜻밖에 물건을 발견한다. 바로 안약이다. 안약을 사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형사들은 안과에 찾아가 이 안약을 처방받은 사람 명단을 받았지만 형사들의 얼굴은 흑빛이었다. 전국의 1000명이 처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일이 1000명에게 전화를해 경찰서 출석 동의를 받거나 찾아가서 동의를 받아 DNA 채취를 해야 한다. 만약 거부한다면 영장을 받아서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채취한다 해도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몇 주가 걸리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당시 대전 국과수에 DNA당 당자는 총 4명 이들은 충청도에 있는 30여 개의 관서의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2007년 자동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일을 하던 시절 1000명의 DNA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조연구원에게 갑자기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바로 옥스포드대학교 교수가 쓴 성씨와 Y염색체 논문이다.  영국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할아버지, 아버지와 아들 같은 성씨의 남성은 같은 Y염색체를 물려받는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국내 수사에서 처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검사 결과 오 씨 성을 가진 남성 특정된 범인을 1000명에서 50명 압축시켰다. 100% 신뢰할 수 없는 수사방법이지만 50명으로 단축된 수는 엄청난 시간 단축과 수사 효율을 높여줬다.

 

수사는 급물살을 나고 50명의 DNA 채취를 시작한다. 그중 25번째 채취자인 오 씨 그는 흔퀘히 DNA 채취에 동의하고 수사에 협조했다. 그래서 형사들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범죄 경력을 조회해보니 15년을 살고 2년 전 출소한 사람이었다. 죄명은 살인, 사체유기로 1989년 8월 14일 체포되었다.


당시 뉴스, 기사 내용으로 오 군은 지난 12일 오후 1시쯤 자신의 집 앞에서 놀던 7세 유모양을 마을 뒷산으로 데리고 가 폭행하려고 했다. 유양이 울고 집에 가려고 하자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이다. 이어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유양을 살해했던 산으로 다시 올라가 미리 준비했던 흉기로 유양의 목 등 온몸을 찌른 뒤 깊이 20cm의 웅덩이를 파고 묻었다. 너무나 잔인한 범행이었다. 이때 당시 오 씨의 나이가 18살이었는데 소년법상 줄 수 있는 최대 법정형이 15년이었다.



조사 중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이번 살인이 처음이 아니라 무려 두 명이 더 더 죽인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칼로 목을 찌른 범행 수법이다.


이번 다방 사건과 수법이 일치한 것이다. 형사들은 다급해졌다. 바로 그때 국과수에서 연락이 오고 오 씨의 DNA와 잠바에서 나온 DNA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범인은 바로 25번째 검사자 오 씨였다. 형사들은 바로 집과 회사로 찾아갔는데 그는 없었다. 형사들이 다녀간 뒤 며칠 뒤에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의 집 앞에서 며칠 간 잠복수사 끝에 오 씨가 나타났고 체포하게 된다.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이유는 서울 영등포로 갈 차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영등포로 가는 차비는 3천 원이다. 정신감정 결과 그는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았다. 이 결과는 10대 때 살인을 저질렀더 그때에도 같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이때 검거되지 않았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을 것이다. 오 씨는 재판 결과 무기징역을 받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검거율 97.2 최고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국과수 형사들 모두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불철주야 밤낮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늦은 밤 새벽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세계인들이 볼 때 깜짝 놀랄 정도의 치안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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