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꼬꼬무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 최악의 오보 사건

by bullhak 2021. 11. 9.
반응형

평소 낚시를 좋아하던 구성회 씨는 과장님 부장님 등 회 사람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향한다. 부안 바다에 도착한 그들은 심상치 않은 파도를 보도 목적지로 배를 타고 가도 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때 마침 성회 씨 일행이 타고 섬으로 가게 될 배가 도착했는데 배는 너무나도 작은 낚싯배였다. 성난 파도에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가도 될지 고민에 빠졌지만 낚시를 하러 먼길을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엔 아쉬워 거친 바도를 뚫고 가까스로 위도에 도착하게 된다. 일행들은 거친 파도에 낚시를 하지 못하고 근처 숙소에서 숙박을 하는데 다음날 아침 낚싯배 주인이 풍랑주의보가 일어나면 섬에서 못 나간다고 빨리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서 둘러 배를 타로 나갔다.

 

 

높은 파도에 낚시배를 다시 타기 꺼려했던 사람들 앞에 그때 마침 110톤급인 서해훼리호를 발견한다. 위도와~격포를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하는 서해훼리호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금세 만석이 되었고 선실 안에 자리가 없어서 배 지붕 위에 올라타는 상황도 발생했다. 배는 얼마 가지 않아 프로펠러에 밧줄이 엉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급기야 갑자기 뒤에서 큰 파도가 여객선을 덮쳐 배가 옆으로 뒤집히고 결국에는 침몰하게 된다. 침몰하는 배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떠있던 몇몇 생존자들은 2개의 구명정에 탑승했고,  또 다른 생존자들은 바다 위에 떠있는 아이스박스를 붙잡고 구조대를 기다리게 된다. 서해훼리호에는 총 9개의 구명정이 있었는데 이때 2개밖에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종국호 선장이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무전을 듣게 된다. 이 낚싯배에는 손님 12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침몰지역으로 가는 걸 꺼려했다. 혼자 힘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종국호 선장은 손님들을 설득해 모두 다 같이 침몰지역으로 가게 된다. 종국호는 사고 발생 20분 만에 도착했는데 배는 흔적도 없고 시체가 널린 현장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구조하러 온 종국호를 발견한 생존자들은 목놓아 구조요청을 했고 악천후 속에서 한 사람 한사람 구조해낸 결과 종국호는 40여 명의 생존자를 구출하게 된다. 정원이 초과된 종국호는 돌아가려 하는데 그 순간 46척의 어선들이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출동 총 70명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반응형

 

사고 수습을 위해 대책본부가 나섰는데 실종자 파악도 정확히 안 되고 누가 배에 탑승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유는 표를 여객선에서 직접 판매했고 신분증 확인과 탑승자 명단도 작성하지 않아 인원 파악이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직접 찾아 나서거나 유실품을 보고 찾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한편 선장과 승무원들이 생존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목격자에 증언이 있었는데 이를 들은 기자가 기사를 내고 언론으로 급속히 퍼지게 된다.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고 결국 지명수배까지 내려 추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선장과 승무원들은 침몰된 배안에서 시체로 발견되게 되고 선장이 생존해있단 기사는 사상 최악의 오보로 기록이 되고 만다. 나중에 사실관계를 알아보니 선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는 당시 위도에 발령난지 얼마 안 된 선장을 닮은 경찰을 보고 여객선 선장으로 착각한 것이다.

 

승객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등, 대책본부의 운용에도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고, 해경의 초기 대응이 늦어 정부를 향한 비난이 거셌다고 한다. 그 결과 문책인사로서 교통부 장관과 해운항만청장, 군산지방 해항청장이 해임되었고, 교통부와 해운항만청의 관계 공무원 38명이 문책되었고, 해운조합 이사장도 해임되었다.

 

 

정부와 항만 관계자들은 매번 문제점들을 고치겠다고 하지만 같은 형태의 이런 참사가 20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년 20년째 되는 해에 또 참사가 발생할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