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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대 미제사건 개구리소년사건 정리

by bullhak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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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사건은 1991년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한 김종식, 김영규, 박찬인, 조호연, 우철원 다섯 명의 소년 실종사건이다.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과 함께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사건이다.

1991년 3월 26일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 다섯 어린이가 집 뒤편에 있는 대구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실종된 당일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있는 날이었다.

 

임시공휴일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아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전에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고, 개구리 소년들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기도 하였고, 부채, 공중전화카드, 열기구 등에 광고를 부착하였다. 그리고 전국 초등학교에서는 대구 개구리 친구 찾기 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전 국민들이 개구리소년들을 찾아 나섰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정 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와룡산 일대와 전국을 수색했다. 전국 새마을 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은 700만여 장의 전단을 전국에 부렸고 한국 담배 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뱃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쇄해 수색작업에 동참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현상금 4200만 원과 

1996년까지 5년간 35만 명이 동원되어 산악수색, 검문검색을 펼쳤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사건이 장기적으로 흘러가게 되자 루머들이 떠돌기 시작했는데 세간에는 "ufo에 납치되었다" "북한에 납북되었다" "생체실험으로 희생되었다"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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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들도 돌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인 어느 대학교수가 실종자의 아버지를 용의자로 지목해 피해자의 집을 부수고 파 해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 대구 와룡산에 도토리를 주으러 다니던 등산객이 유골을 발견해 11년 만에 유골과 신발 5켤레가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으나 법의학 팀은 부검 결과 흉기에 찍힌 자국이 25군데로 처참하게 살해된 것이 확인되어 명백한 타살이다라고 주장했다. 유골 발견 당시 삽으로 유골을 파는 등 부주의한 발굴로 현장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유해에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상태였고 수사의 진척도 없어 결국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06년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개 팀, 성서경찰서 강력팀 등 18명만이 사건을 맡았고 결국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개구리소년의 유족들은 공소시효 연장 폐지를 주장해 왔지만 공소시효 연장을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에 통과되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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