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꼬꼬무 시즌3

꼬꼬무시즌3 48회 세계최초 탈북촬영 검은강을 건너라 47년만의 탈출 sbs 목요일 예능

by bullhak 2022. 10. 7.
반응형

 

때는 1997년 7월 27일 중국

 

택시 안에는 김천홍이란 sbs 기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중요한 취재를 앞두고 출장을 가고 있었던 길이었다. 달리던 택시가 허름한 시장 앞에서 멈춰 섰다. 쇼핑을 하러 들린 것이다 가방, 바지, 티셔츠 등을 구입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제일 낡은 것만 구입을 한 것이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변장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변장을 하고나니 완전 현지인이나 다름없었다.

 

 

김기자의 목적지는 장백 조선족 자치현이었다. 압록강과 맞닿아 있어서 북한과 근접한 지역이었다. 중국 공안의 감시가 엄청 심한 곳이다.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면 체포되기 때문에 현지인처럼 위장한 것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한밤쯤이 돼서야 도착한 곳은 장백의 한 마을이었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도착하고 문을 여는데 60대 남자와 갓난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셨습네까?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남자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손을 덜덜덜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이 김기자에게 공민증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북한 사람이었다 . 남자 이름은 이용운, 여자는 딸 이애란, 갓난아기는 100일 된 애란의 아들이다. 이들은 김기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6.25 때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려고 북한을 탈출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에 가족이 7명이나 더 있었다. 이 7명의 가족을 데리고 탈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거의 불가능하고 위험한 계획이었다.

 



1989년 북한 양강도 혜산에 있는 이용운 씨의 집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장백과 맞닿은 곳이다. 

 

 

어느 날 교포 총국에서 메시지가 왔다.


"동생이 이용운 동무를 찾고 있음"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6.25 피난길에 부모님과 동생들과 헤어졌는데 전쟁통에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0년 만에 동생이 형을 찾는 것이다. 용운 씨는 교포 총국으로 달려갔다.


"동생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라요"


그런데 동생이 있는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동생 넷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는 것이다. 이용운 씨의 딸 애란 씨는 이게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은 최악이었다 산, 길, 도로에는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시체들로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 이었다. 애란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국에 있는 할머니께 편지를 썼다.

할머님을 비롯한 일가 분 모두가 살아계신다니 기쁜 이 마음 반가운 이 마음 말로,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양이 고향이긴 하지만 집도 없고, 부모님들도 없고 하니까 군사복무를 마치면서 량강도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더 가기 전에 보고 싶습니다. 조국에서 할머님의 손녀 애란 삼가 올립니다.

 


세 달이 지날 무렵 답장이 도착했다.

용운아 40년이나 지났는데 네가 살아있다니 마치 꿈만 같다. 가족이 너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많이도 울었겠구나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백 할머니는 그동안 아들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이산가족상봉에 신청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아들을 찾을 수 없었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북한에 수소문했는데 연락이 닿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애란의 집 문을 두드렸다. 처음 보는 남자가 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건넸다. 카세트에 담긴 메시지는 


"책임지고 서울로 데려올 테니 북한을 탈출해라"

 

반응형


애란 씨는 공포와 불안으로 심장이 막 뛰었다. 한편으론 내 아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있었다. 곧바로 아들 가족은 탈출 준비를 시작했다.지인을 통해 김지자를 알게 된 백 할머니가 김기자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김기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김기자의 가족도 북한에 있었던 것이다. 김기자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기자는 누나를 탈북시키려던 계획을 접고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여 백 할머니 가족을 탈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준비기간만 약 1년이었다.

그런데 이날 7명의 가족 중 일부가 탈북을 망설여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애란이 말했다.


"내가 돌아가서 데리고 오갔습네다"


연세 드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이 데리고 오겠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아들을 들쳐업었다.

 

"아무래도 아랑 같이 가야겠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못 만날까 봐 절대 아이를 두고 못 가겠다는 것이다. 애란이 압록강을 건너는데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돼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취조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 울며 불며 매달렸지만 수비대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순간 뭔가 떠오른 애란 씨

 


"잠시만 있어보시라요"


보따리에서 담배와 술을 꺼내 주었는데 이 방법이 통했고 애란 씨를 보내주었다.

 

 

그 시각 중국 장백에 있는 김기자는 밤을 꼴딱 새우고 압록강으로 향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걱정하던 찰나에 애란이 나타났다. 애란은 수신호를 보내 약속 날짜를 3일로 변경했다. 그리고 3일에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 또 수신호로 날짜를 변경했다. 이번엔 5일 이었다. 약속한 5일 애란 씨를 기다리는데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다음날인 6일이 되어서야 다시 나타났다. 그날 중국에 물건을 파는장사꾼인 조선족 안내인이 있었는데 그는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다녀서 국경수비대의 검문 없이 그냥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이용해 애란 씨는 쪽지를 강 건너편으로 쪽지를 보냈다.

 


아버지 이 편지가 가면 김 선생님께 최대의 사의를 표시하고 곧 오십시오 우리의 계획은 다 틀어졌습니다. 야단 중에 야단은 이모가 8월 3일에 도착하였는데 어머니가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니 펄쩍 뛰면서 당장 보위부에 가겠다고 야단입니다. 막 기절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바람에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모에게 탈북계획이 들켰고 탈북하려고 움직이는 즉시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이용운 씨는 고민에 빠졌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다 입을 열었다.

 

 

"내래 북으로 돌아가겠습네다"

"저 기자 동무 내레 어머니에게 인사라도 남기고 싶습네다"


이렇게 이용운 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김기자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며칠 후 김기자한테 급한 연락 한통이 온다. 조선족 안내인이었다.


"전부 다 건너오겠답니다"


8월 15일은 민족해방의 날이라고 명절처럼 지내는 날인데 이날 이모가 음식 준비로 정신없을 때 북을 탈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직 가족끼리 합의가 되지 않았다. 애란과 아버지는 탈출하겠다고 했지만 일이 틀어질까 봐 애란과 남동생은 남편과 부인에게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족들이 다 가면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엘리트였고 약혼 했던 셋째는 절대 못 가겠다는 것이다. 참 복잡한 상황이다. 애란 씨는 고민 끝에 일단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조선족 안내인에게 연락했다.


"내일 다 같이 압록강을 건너가겠습네다"
"기자 동무를 불러주시라요"


후에 가족들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남편에게 15일에 중국 가서 쌀을 팔자고 하고 압록강을 건너갈 생각이었는데 이날 술에 만취해 들어온 것이었다. 새벽 2시 남편은 만취해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란 씨는 잠든 남편을 그대로 두고 아이를 업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서 곧장 친정으로 갔다.


"어머니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준비하시라요"
"나는 못 간다 상철이만 두고 갈 순 없어"


옆에 있는 여동생도 엄마 혼자 두고 못 가겠다는 것이다. 새벽 3시 조선인 안내인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애란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불빛 하나 없는 압록강변에 도착했다. 강을 건너려는데 국경수비대가 나타났다.


"간나 새끼들 어디 가는 거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개머리판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빛이 깜박깜박하는 걸 병사들이 보고 불빛을 향에 병사들이 뛰어갔다. 잠시 뒤에 다시 오더니 "날래 건너가라" 보내준 것이다. 자세히 보니 병사들의 양손에 술과 담배를 잔뜩 들고 있었다. 뇌물을 받은 것이다. 기다리던 조선족 안내인이
급히 손을 쓴 것이다.

 


얼마나 맞았는지 학철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김기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 같이 넘어올 줄 알았는데 아닌 것에 실망한 것이다. 생이별한 어머니와 아들을 만나게 해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또 다른 이산가족이 생겨버려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김기자는 최대한 빠르게 장백을 벗어나는 쪽을 선택한다. 1차 목적지는 심양 700km 떨어진 거리다. 이동경로는 백두산 자락이라 길이 엄청 험했다. 한참을 가다 앞서가던 택시가 멈춰 섰다. 검문소가 나타난 것이다. 앞차가 신분증 검사를 하는 동안 뒤차에 신호를 줬고 김기자는 탈북자인 애란 씨 가족을 급하게 대피시켰다.

 


"저쪽 산길로 돌아가서 무조건 앞만 보고 가요"
"저 고개 넘어서 다시 만나요"


저 앞에서 공안이 기관총을 들고 서있었다. 간신히 들키지 않고 산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저 앞쪽에 김기자가 보였고 다시 합류하게 됐다. 1997년 8월 17일 무사히 심양에 도착했다. 그 시각 심양엔 백 할머니가 와있었다. 47년 만에 상봉한 백 할머니의 표정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울지 말라 못 나온 아이들 얼른 데려오라"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 

 

북한에 남아있는 며느리와 손주들이 걱정된 것이다. 애란 씨는 다시 한번 어머니를 설득해보기로 결심했다. 북한의 가족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어머니 우리는 이번에 가지 않으면 다 죽은 목숨입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도 없거니와 가지도 못합니다. 비가 쏟아지면 끝장입니다.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언제 탈북 사실이 알려질지 몰라 늦어질수록 위험한 상황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건널 수도 없게 된다. 며칠 후 인편을 통해 답장이 전달된다. 막내 미란의 답장


보고 싶은 언니에게 우리가 통째로 떠나 집이 비어 있으면 아버지 언니 오빠가 할머님 곁에 가기도 전에 들킬 거예요
저희들이라도 여기에 있어야 아버지를 비롯한 언니 오빠가 일 없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곁으로 가면 우리 
인사도 함께 전해주세요 언니 오빠 아버지 모두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중국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것이다. 공안의 감시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상황 애란은 심양에서 기차를 타고 베트남 국경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관문인 베트남 국경을 무사히 넘었고 한국 대사관으로 가서 망명 신청까지 마쳤다. 그렇게 애란 일행의 북한 탈출은 무사히 마무리된다. 탈출은 성공했지만 김기자는 가족을 찢어 놨단 생각에 밤새 술을 마셨다. 바로 그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김 기자님 지금 빨리 중국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백에 있던 조선족 안내인이었다.


"이용운 씨 가족이 압록강을 건너왔습니다"


김기자는 다시 중국으로 날아갔다.


일주일 전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 며칠 동안 집에 나타나지 않던 상철이가 불쑥 나타났다. 뭔가를 결심한 표정이었다.


"오마니 우리도 갑시다"


가족이 탈북한 게 당국에 알려지면 연좌제를 지기 때문에 탈출을 결심한 것이다. 어머니의 대답


"니들이나 가라 내레 여기 남아야겄다" 


북에 남겨질 어머니의 친정 식구들이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상철은 큰 결심을 했는데 어머니가 안 가신다고 하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오마니 그럼 여기서 죽을 겁네까?"
"어차피 죽을 거 뭐라도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안 갔습네까?"


애란 일행이 떠나고 20일 탈출을 택한다. 

 

 

상철은 북에 있는 지인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과 한국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상철 일행의 탈출은 원망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바로 그때 남은 가족들의 탈북 소식에 백 할머니는 다시 중국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났고 이날 가족들이 거짓말처럼 안정감을 되찾자 상철 씨는 "혈육의 정이라는 게 이렇게 까지 있을 수 있는가"라며 울먹였다.

 

 

다시 완전체가 된 가족 1997년 12월 30일 서울 이용운 씨 가족 9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150일간의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출연진 :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
게스트 : 김민석, 장예은, 정이랑

반응형

댓글